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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방촌리 석장승(長興 傍村里 石將僧)

석장승
주소
관산읍 장흥대로 1674
전화
--
추천
0
이용시간
상시
이용요금
무료
주차시설
주차장 없음

시 대 : 고려시대
재 료 : 화강석
지정년월일 : 1999년 2월 26일

규모 :① 진서대장군 - 높이 2.35m 앞면최대넓이 54cm 두께 40cm 머리높이 57cm 둘레 160cm
② 미륵 석불 - 높이 1.97m. 앞면최대넓이 48cm 두께 48cm 머리높이 92cm 둘레 173cm

장흥 관산읍에서 방촌으로 넘어드는 마을 입구에 동서로 서 있는 남녀 한 쌍의 돌장승으로, 마을의 잡귀와 액운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으로서의 구실을 하고 있다.
서쪽에 있는 장승은 ‘진서대장군’이라는 기록이 있는 남 장승으로 ‘벅수’라 불리고, 동쪽에 있는 장승은 여 장승으로, ‘미륵석불’·‘벅수 ’·‘돌부처 ’등으로 불린다.

총크기와 머리크기의 비율을 보면 진서대장군이 1 : 4 미륵석불이 1 : 2이다. 전체크기에 비해 몸통 둘레가 작고 각 면이 각을 이룬 장방형에 가까운 형태이다. 반면에 전체크기에 비해 둘레가 크고 각 면에 각이 없는 원통형인 미륵석불은 머리에 비해 몸통이 풍만하다. 남・여장승이 모두 두부(頭部)외에는 별다른 조식이 없다. 진서대장군은 전체적으로 간략하고 평면적인 조각이다. 얼굴이 있는 위쪽의 폭이 아래보다 조금 넓다.

얼굴에는 왕방울눈이 이중선각(二重線刻)으로 처리되어 있고 주먹코가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양옆 볼까지 찟어진 입을 보면 입술이 두텁고 입꼬리가 귀밑으로 치켜 올라가 전체적으로 익살스럽게 활짝 웃는 형상이다. 목 밑에서 가슴의 명문 윗쪽까지 역삼각형의 수염이 넓게 선각되어 있다. 그 수염 밑에서부터 좌대까지 鎭西大將軍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한편 미륵석불은 진서대장군에 비해 풍만하면서도 조각이 깊고 무서운 인상을 주고 있다. 얼굴 반을 차지한 부리부리한 왕방울 눈이 툭 튀어 나와 있고, 우뚝 솟은 주먹코가 남은 얼굴 반을 차지하고 있다. 두터운 입술을 갖고 있는 입은 직선에 가깝고 짤막하다. 이마에는 반원형으로 나란히 곡선이 선각되어 있다.
방촌리 석장승 건립 당시에는 성문을 수호하는 공공장승의 기능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元宗 6년(1265) 長興府가 懷州牧으로 승격 개칭되고, 회주목의 치소가 있던 방촌을 보강하고자 상령산성(觴岺山城)과 회주고성(懷州古城)을 축성하면서, 성문인 북문동의 동쪽에 미륵으로부터 치소를 지키고자 축성되었던 성으로 방촌마을 주변에 그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 이 회주고성의 서쪽이 약하다하여 읍성의 보허진압(補虛鎭壓) 및 수호를 위해 서문밖에 이 장승을 세웠다고 전해져 오고 있으나 동쪽에 세워진 것으로 전해오는 미륵석불이 진서대장군과 함께 쌍을 이루고 서있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는 밝혀져 있지 않고방촌 석장승은 제작연대와 그 기능 형태와 명문 등으로 보아 민속신앙과 생활문화사와 관련된 귀중한 학술적 역사적 자료가 되고 있다.

관산읍 장흥대로 1674

최종업데이트
2024.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