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사람 조기성 前 大使의 자선외교
- 작성일
- 2004.02.28 11:14
- 등록자
- 이OO
- 조회수
- 1873
동아일보 (2004년 2월 25일 21면)
=인물포커스=
◆퇴임대사의 자선외교
-의료재단 발족 앞둔 조기성 전 대사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아마라 주의 주도인 바히르다르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 거리, 그러나 육로로 가면 험한 도로사정 때문에 20시간 넘게 걸린다.
지난해 12월 29일 바히르다르에서 아담한 병원이 문을 열었다. 3000평방미터(약 900평)의 터에 행정동 진찰동 등 7개동으로 이뤄진 이 병원은 한국인이 아프리카 지역에 처음으로 지어준 자선병원이다. 매년 약 6만 명이 이곳에서 진료를 받게 된다.
이 병원 건립을 총 감독한 주인공은 조기성(曺基成. 68) 전 대사.
"1993년 한국 정부가 페루 갈라오 시에 병원을 지어준 일이 있는데, 당시 페루 대사로 있으면서 실무를 담당했습니다. 그 노하우를 살려 은퇴 후인 2002년에는 사재에다 주변 분들의 도움을 더해 과테말라 원주민 지역에도 병원을 열었죠"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문명의 혜택을 덜 받은 지역에 병원을 건립하는 일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선 조씨의 일하는 방식은 이렇다. 병원을 지을 때는 우선 수혜국 정부와 약정을 체결한다. 해당국 정부는 대지 900평 정도를 공여하고 전기와 수도를 설치하며 현지 의사와 간호사 3, 4명을 임명해야 한다. 조 대사측은 병원이 지속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건립 이후 현지 의료팀에 이 병원을 '기증' 한다.
한 동에 들어가는 건설비와 집기 비용은 1만 2000달러(약 1400만원)가량, 조씨 외에 공노명 전 외무부장관, 김장환 극동방송 사장, 과테말라 한인회 등이 건립비를 지원했다. 미국에서 대학교수와 변호사로 활동 중인 조씨의 딸과 아들도 '의무적'으로 한 동씩 지을 돈을 내기로 했다.
병원 공사기간에는 조씨도 현지에서 함께 지낸다. 과테말라에서는 현장을 6개월간 지키면서 체중이 11kg이나 줄었다. 처음엔 방을 구하지 못해 현지에서 선교하는 한국인 신부 숙소에서 신세를 졌는데, 밤마다 정체 모를 벌레들에게 온몸을 물어뜯기곤 했다.
어려움은 그뿐이 아니었다. 공사기간에 우기가 겹치며 노상에 둔 시멘트가 쓸려 내려갔다. "다 고마운 사람들이 좋은 데 쓰라고 준 돈인데..., 그곳 일꾼들은 비가 오면 일을 안 해요. 나라도 직접 비닐과 돌로 물길을 막을 수밖에. 눈물인지 빗물인지 흐르더라고."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나이에 , 그는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는 걸까?
"50년대 한국이 어땠는지 모르죠? 도움을 주러 온 외국 자선단체를 보면 고맙고 또 부끄럽고...., 1959년 남미로 유학 갔는데, 당시 한국의 위상이라는 게 유학생들을 어찌나 서럽게 하던지....."
외교관 생활 40년, 앞으로 한국을 '분단국' '고도 성장국'에서 '도덕국가'라는 이미지로 변화시키는 데 한몫 하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기업들도 '기업윤리'와 '사회환원'이라는 게 있잖아요. 우리는 과연 국제사회에서 위상에 걸맞는 역할을 하고 있나 고민하게 되더군요. 마침 페루에서 구체적인 방법을 발견했으니, 난 운이 좋은 거죠. 세계 곳곳에서 수십만 명의 현지인들이 한국인이 지은 진료소에서 병을 고친다고 생각해 보세요."
올해는 동남아에 병원을 짓기 위해 캄보디아 등과 약정 협상 중이다. 나아가 모금과 병원 건립 실무를 맡을 '평화를 위한 의료재단'(가칭. 팩스 02-400-7655, 02-754-0901)도 곧 정식 발족할 계획이다.
조씨는 "더 나이 들어 비행기도 못 타고 시멘트도 못 나르게 되기 전에 한 군데라도 더 부지런히 병원을 짓겠다" 고 말했다.
- 김승진 기자 sarafina@donga.com
◆조기성씨는
△1936년 전남 장흥 출생△1959년 한국외국어대학 서반어과 졸업△1961년 외무부 입부△1988년 주 과테말라 대사△1994년 주 아르헨티나 대사△1999년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문제연구소 초빙교수△2000-2001년 8월 이화여대 법대 교수 △에콰도르 칠레 아르헨티나 등에서 스페인어로 '미주기구론' '국제법'등 학술서적 출간